피고인들(왼쪽)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이날 18명이 마약을 보관, 밀매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이 2명 포함됐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베트남에서 마약류를 유통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한국인 2명 중 한명이 전직 국정원 직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1일(현지시각) 베트남 호치민 가정소년법원에서 마약 밀매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일당 중 한 명인 김모(63)씨는 전직 국정원 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1987년 1월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입직해 1999년 9월 30일 면직된 것으로 전해졌다. 면직 사유는 사표 수리였지만, 밀수 사건에 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16kg 상당의 마약류를 유통한 혐의로 지난 8월 기소됐다. 사형을 선고받은 일당 18명 중 김씨와 강모(30)씨, 중국인 리모(58)씨를 제외한 나머지 15명은 베트남인이다.

김씨는 베트남 현지 언론에서 “한국에서 경찰로 근무하다 규정 위반으로 면직 처리 됐다”고 보도됐었다. 이에 대해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담당관실은 “전직 경찰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었다.

김씨는 지난 1999년 국정원 부산지부 항만분실에서 보안책임자인 항만기록계장으로 근무했다.

김씨는 국제여객부두 보안책임자라는 직책을 이용해 밀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같은해 9월 23일 오후 5시 밀수 일당이 한·일 간을 왕래하는 ‘부관 페리호’로 일본제 골프채 519개가 담겨진 종이상자 4개를 부산항 국제여객부두에 들여오는 데 도움을 주고, 이를 외부로 반출하려 하다 검거됐다. 이전에도 김씨는 같은 방식으로 세 차례 더 밀수에 관여해 골프채 1500여개를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관세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벌금 4억6000만원을 지난 2000년에 선고 받았다. 이 건을 포함해 김씨는 지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출입국관리법 위반, 탈세 등 혐의로 한국에서 6차례 복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고등학교 동창인 배모(63)씨는 “당시 김씨가 근무하던 안기부 부산지부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해 자주 만났다”면서 “경북대 공대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동아대 법학과로 편입을 한 독특한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또 “김씨가 안좋은 일에 손대기 시작하면서 동창들과 연락이 끊겼다”며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수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린 김씨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7년 서울의 한 식당에서 김씨를 만났다는 박모(43)씨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씨가 사업을 제안해왔다”고 했다. 무역회사를 다니던 박씨에게 김씨가 중국 무역에 관심이 있다며 접근한 것이다. 박씨는 “당시 김씨는 본인을 국정원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국정원에 아는 사람도 많고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무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했었다”면서 “다만 사업 방향이 맞지 않아 함께 사업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베트남 언론 VNEXPREES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19년 베트남으로 이주해 현지 애인과 함께 건축용 석재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김씨는 지난 2020년 6월 호찌민의 한 식당에서 만난 중국인 리씨로부터 “물건을 운반해 주면 1㎏당 500만원을 지급하겠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제안을 수락한 김씨는 전 교도소 동료인 강씨까지 끌어들였다.

이에 김씨와 강씨는 2020년 7월 세 차례에 걸쳐 마약을 건네받은 뒤, 김씨가 수출하는 건축 자재 화강암에 숨겨 한국의 인천항으로 밀반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베트남 공안이 항구로 들어오는 운반 선박을 수색하다 범행이 발각됐다. 해당 선박에선 가로 세로 20cm 길이의 석재가 쌓인 틈 속 녹차 패키지에 담긴 마약 39.5kg이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한 베트남의 수사관은 “김씨와 그 애인이 운영한 석재 수출 업체는 페이퍼 컴퍼니였다”며 “김씨가 수속 절차와 선적물 스캔 과정을 잘 알고 있어 검사기에 들어가도 걸리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 부산지부에서 보안담당자로 일하던 당시 밀반입에 활용한 방법이 해당 범죄에도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김씨는 건네받은 물건이 마약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중국인 리씨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운반했을 뿐, 비아그라인 줄 알았지 마약인 줄은 몰랐다”며 자신은 속았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 중이다.

베트남 현행법상 헤로인 600g 이상 또는 필로폰 2.5㎏ 이상을 소지하거나 운반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외국인도 예외는 없다.

양승수 기자
원문: 조선일보

출처 : 베트남 그라운드(http://www.vietnamgrou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