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전쟁으로 인해 트어티엔-후에(Thừa Thiên Huế)는 황폐하고 폐허가 된 문화유산 더미가 되었지만, 그 이후 이 땅은 지속적으로 문화유산 보존과 국제 협력의 뛰어난 상징이 되었다. 이제 곧 자신의 문화적 “소프트 파워”를 갖춘 중앙 운영 도시가 되기 위해 자신있게 노력하고 있다.
고도 후에 (Cố Đô Huế)유적 단지30주년(1993~2023) 및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후에궁전아악음악(Nhã Nhạc Cung Đinh Huế) (흔히 후에 궁중음악이라고도 함) 20주년(2003~2023)에 보낸 축하 메시지에는 전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Lazare Eloundou Assomo 소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후에가 30년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이후 세계는 고도 후에의 여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도후에는 세계문화유산 보호 및 개발에 있어 중요한 성과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 재탄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고난과 황폐함을 딛고 나타난 후에제국 도시는 황폐화된 문화유산에서 유산 보존과 국제 협력의 뛰어난 상징으로 변모했다.
1993년이 되서야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된 고도 후에 (Cố Đô Huế)유적 단지에 속한 후에 성채의 전경. 사진: 레휘황하이(Lê Huy Hoàng Hải)
1975년 이전부터 후에도심에 거주해 온 타이 바 딘(Thái Bá Dinh) 씨는 지금까지 옛 이야기를 회상할 때 여전히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저의 집은 후에 황성 다이 누이(Đại Nội)근처에 있다. 매일 문을 열면 곳곳에 금궁과 옥궁의 유적이 보이지만 멈출 수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에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5년 이후 고도후에는 총알, 폭탄, 자연재해, 폭풍과 홍수, 심지어 인간 관심 없으로 인해 파괴된 유산 더미를 안고 전쟁에서 물러났다. 응웬(Nguyễn) 왕조 시대의 일련의 건축 작품, 사원, 궁전, 능묘 등이 파괴된다. 나무가 잘려나갔고, 웅장한 도시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내려 연기와 폭탄으로 가득 찼다. 황성 지역에만 원래 136개의 건축 작품이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자금성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같은 운명을 가진 다른 공사도 많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왕실 축제 체계 같은 많은 무형유산; 궁중음악, 궁중가극, 궁중무용 등 궁중공연 형태; 그리고 전통적인 후에 수공예를 포함하여 응웬(Nguyễn) 왕조의 많은 골동품, 서적 및 귀중한 문서도 민속에서 파괴되거나 분실되었다.
1993년에야 고도 후에 유적 단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되었고, 이후 2003년에는 후에궁전아악음악(Nhã Nhạc Cung Đinh Huế)이 인류의 무형 및 구전 문화유산 걸작(현 인류 대표 무형문화유산)으로 공인되었다. 그후 후에 유물의 복원이 새로운 페이지에 접어들었다.
자금성의 건물들을 연결하는 길게 이어진 복도 시스템인 쯔엉랑(Trường lang)의 화려한 황금빛 특징. 사진:탄화(Thanh Hòa)/ 베트남 픽토리알
그후로 유네스코와 국제기구의 적극적인 지원과 특히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트어티엔-후에 성 지도부와 국민의 끊임없는 결심으로 고도 후에 유적 단지 보존 작업이 실행되어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후에 문화유산은 긴급 구조 기간을 극복하고 이제 점차 부활하여 이전과 같은 황금빛 광채를 되찾고 있다.
후에는 개발과 함께 후에를 베트남의 ‘아오자이 수도’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문화 보존에도 노력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평가에 따르면, 후에 유적 단지 보존하는 것은 현재 안정과 지속 가능한 발전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문화유산 가치의 보존하는 것은 항상 관광경제,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지방 및 중부 지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한 조건을 활용해 촉진 및 조성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후에의 문화 보존과 부흥이 응웬푸쫑(Nguyễn Phú Trọng)당서기장이 2021년 전국 문화 회의에서 제시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민족 문화 가치, 지방, 지역 및 소수 민족의 유형 및 무형 문화 가치를 보존 및 홍보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어야한다. 이는 시대의 문화적 정수를 흡수하는 것과 결합되어있다. 베트남 문화의 ‘소프트 파워’를 개발하여 향후 국가 시너지 효과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응웬(Nguyễn) 왕조의 두 왕인 카이딘 왕(Khải Định)과 바오다이(Bảo Đại)가 일하고 생활했던 곳인 건중궁(Kiến Trung.끼엔쭝궁)은 복원 과정을 거쳐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후에 도시 지역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 현대적이고 젊은 방향으로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국가유산위원회 회원이자 트어티엔-후에 성 문화체육국 국장인 판탄하이(Phan Thanh Hải)박사에 따르면 후에는 베트남 도시 개발 역사에서 특별한 현상이다. 그리고 많은 국내외 연구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현재까지 고도 후에는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한 건축 유산 자금을 보유한 도시 중 하나이다. 따라서 트어티엔-후에 성은 중앙이 운영하는 도시의 특별 유산 도시로 건설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2045년 비전 2030년까지 트어티엔-후에 성 건설 및 개발”에 관한 정치국 결의안 No. 54-NQ/TW에 기초하여, 트어티엔-후에성은 특성문화, 유산, 생태, 경관, 환경 친화 및 스마트에관한 고도후에 문화 유산 가치 보존을 기반으로 2025년까지 트어티엔-후에를 중앙 운영 도시로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중요한 계획과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을 실행하려면 후에는 트어티엔-후에를 현대적인 도시 지역으로 개발하는 동시에 문화유산 가치를 홍보하고 보존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을 가져야 한다. 트어티엔-후에는 고층빌딩과 공업단지가 밀집되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하노이, 하이퐁, 다낭, 껀터, 호찌민시처럼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독특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에는 전통적인 기념물과 건축 경관에 영향을 미치지않기 위한 간섭을 제한하고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후에는 후에 유적 단지의 핵심 지역으로 확인된 후에 성채가 위치한 북부 쪽의 그대로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적이 거의 없는 남부쪽과 주변지역의 개발과 확장에 주력한다. 민생을 위한 도로, 공원, 나무, 조명, 보조 시설 시스템을 장식하고 업그레이드한다. 그 덕분에 후에 도시 지역의 모습은 현대성, 역동성, 개방성을 향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유한 전통적이며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후에는 전 세계 여러 국가와 문화 분야의 이미지 홍보 및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 탄화(Thanh Hòa)/베트남 픽토리알
후에에 관광하는 중인 하노이 출신 관광객 판 탄 하(Phan Thanh Hà) 씨는 “후에는 예전에는 슬펐고 도시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에 사람들은 혼자 살아남은 듯 했지만, 지금의 후에는 예전과는 달리 여전히 몽환적이면서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도 있지만 훨씬 더 역동적이고, 젊으며 더욱 신선하다.”
오늘날 후에 청소년의 젊고 활기찬 모습.
후에 문화적 가치의 효과적인 보존과 홍보를 하는 일은 트어티엔-후에의 전략적 개발 사고에 크게 기여했다. 따라서 문화유산은 삶,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측면의 발전을 위한 핵심이자 원동력이 되어 후에를 “베트남의 전형적인 축제 도시”, “ 아세안문화도시”, “아세안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고 있다.
후에는 아세안의 축제 도시이자 문화 도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년까지 중앙 운영 도시가 되기 위한 여정은 더 이상 길지 않으며 문화적 ‘소프트 파워’는 후에가 결승선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